항콜린성 작용이 있는 약이 겹치면 낙상·섬망 위험이 커질 수 있다
영국 연구진이 약 88종을 점수화한 도구를 내놨지만 사고 감소 효과는 아직 확인 전이다
먹는 약을 모두 적어 주치의·약사와 함께 살펴보는 일이 먼저다

아침에는 혈압약과 위장약, 저녁에는 콧물약과 잠을 돕는 약, 밤에 자주 깨는 방광 증상 때문에 먹는 약까지 챙기는 어르신이 드물지 않다. 병원마다 따로 받은 약이니 서로 상관이 없으리라 생각하기 쉽다. 다만 이름과 용도가 다른 약이라도 몸 안에서 같은 방향으로 작용하면 그 부담이 차곡차곡 더해질 수 있다.

메디컬투데이가 2026년 11월 6일 전한 바에 따르면 영국 리즈대학교와 리버풀대학교 공동연구팀은 국제학술지 “BMJ Medicine”에 낸 논문에서, 노인이 먹는 약의 항콜린성 부담을 점수로 계산하는 “항콜린성 약물지수(ACMI)”를 만들었다고 밝혔다. 연구 발표는 현지시간 5일이다.

낯선 이름, 그러나 흔히 먹는 약

항콜린성 약물은 신경 사이에서 신호를 주고받는 물질인 아세틸콜린의 작용을 누르는 약을 통틀어 부르는 말이다. 방광 기능 이상, 호흡기 질환 치료 등에 쓰인다. 보도에 따르면 일부 항우울제나 항히스타민제(알레르기 증상을 가라앉히는 약)처럼 본래 치료 목적과는 별개로 이런 작용을 함께 내는 약도 있다.

걱정되는 대목은 이런 약 여러 가지를 한꺼번에 먹을 때다. 작용이 겹쳐 쌓일 수 있고, 나이 든 환자일수록 부담이 커지면 섬망(갑자기 정신이 혼란스럽고 주의가 흐트러지는 상태), 낙상, 인지기능 저하 위험이 함께 올라갈 수 있다. 연구에 참여한 리즈대학교 케이트 베스트 교수는 영국 노인 가운데 약 절반이 해마다 한 가지 이상의 항콜린성 약을 처방받는다고 설명했다.

65세 이상 75만 명 기록으로 만든 점수

연구진은 영국 브래드퍼드와 웨일스에 사는 65세 이상 약 75만 명의 의료 기록을 살펴, 어떤 약을 먹었는지와 낙상·섬망으로 입원했는지 사이의 관련성을 따졌다. 그 결과를 토대로 진료 현장에서 쓰이는 항콜린성 약 88종에 점수를 매기는 체계를 세웠다.

이 지수는 환자가 먹는 항콜린성 약에 나이와 건강 상태 등을 더해 앞으로 1년 안에 낙상이나 섬망으로 입원할 가능성을 추정한다. 전자의무기록(병원 진료 기록을 전산으로 관리하는 시스템)에 곧바로 붙여 쓰도록 만들어져 의료진이 손으로 계산하지 않아도 위험이 높은 환자를 가려낼 수 있다. 브래드퍼드의 일차의료기관에서는 65세 이상 환자의 점수와 관련 약을 자동으로 띄우는 시범사업이 있었고, 영국 국민보건서비스(NHS) 산하 2개 기관은 약이 새로 들어가거나 빠질 때마다 점수가 저절로 바뀌는 시스템을 쓰고 있다.

위험을 짚어 내는 것과 사고를 줄이는 것은 다르다

이번 연구의 성과는 위험을 예측하는 모델을 만들고 검증한 데까지다. 보도에 따르면 이 도구를 실제 진료에 썼을 때 낙상이나 섬망이 줄어드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연구진은 노인 병동과 고관절 골절 환자 진료 현장에서 쓸모를 더 따져 볼 계획이다.

이 지수는 영국 의료 체계 안에서 만들어지고 시험 중인 도구여서, 국내 병원이나 약국에서 같은 점수를 곧바로 받아 볼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 이 연구에서 읽어 낼 수 있는 것은 약 하나만 볼 것이 아니라 함께 먹는 약 전체의 무게를 따져야 한다는 방향이다.

그렇다고 항콜린성 작용이 있는 약이라는 이유만으로 스스로 복용을 멈추는 것은 오히려 위험할 수 있다. 약마다 처방된 까닭이 있고 갑자기 끊으면 본래 병이 나빠질 수 있다. 약을 바꾸거나 줄이는 일은 처방한 의사와 상의해 정할 필요가 있다.

약 봉투를 모아 들고 물어볼 것

여러 병원과 약국을 오가는 어르신이라면 처방약은 물론 약국에서 사 먹는 감기약, 알레르기약, 수면 보조제까지 한 장에 적어 두거나 약 봉투를 한곳에 모아 두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다. 진료를 받거나 약을 살 때 이 목록을 내보이면 비슷한 작용을 하는 약이 겹치는지 확인하기 수월하다.

요즘 들어 넘어질 뻔한 일이 잦아졌거나, 정신이 갑자기 흐려지는 때가 생겼거나, 기억력이 눈에 띄게 떨어졌다면 최근 새로 먹기 시작한 약이 있는지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런 변화는 먼저 주치의나 단골 약사에게 알리고, 가까운 보건소나 국민건강보험공단 지사에서 받을 수 있는 복약 상담이 있는지 알아보는 것이 순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