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지 않아 넘기기 쉬운 고혈압, 혈관과 장기에는 부담이 쌓일 수 있다
130/80은 관리를 시작하는 선, 140/90은 치료를 따져 보는 선으로 구분된다
올바른 방법으로 잰 집 혈압 기록을 들고 주치의와 상의할 필요가 있다

진료실에서 “혈압이 조금 높다”는 말을 듣고도 아프지 않으니 대수롭지 않게 넘기는 경우가 적지 않다. 질병관리청 통계에 따르면 국내 20세 이상 성인의 3명 중 1명이 고혈압이고, 그중 절반은 자신이 고혈압인지 모르고 지낸다. 다만 증상이 없다는 사실이 혈관이 안전하다는 뜻은 아니다.

증상은 없어도 혈관과 장기에는 부담이 쌓일 수 있다

고혈압이 흔히 “조용한 살인자”로 불리는 까닭은 뚜렷한 통증 없이 몸 곳곳의 혈관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높은 압력을 오래 받은 혈관은 안쪽 벽이 손상될 수 있고, 그 자리에 콜레스테롤이 쌓이면 동맥경화(혈관 벽이 두꺼워지고 굳는 현상)가 진행될 수 있다.

심장도 영향을 받는다. 높은 압력을 이기고 피를 내보내느라 더 세게 뛰는 상태가 이어지면 심장 근육이 두꺼워졌다가 약해질 수 있고, 심부전(심장이 피를 충분히 내보내지 못하는 상태)으로 이어질 수 있다.

뇌에서는 혈관이 터지는 뇌출혈, 혈관이 막히는 뇌경색이 문제가 되는데, 고혈압은 이 둘을 아우르는 뇌졸중의 대표적인 원인으로 꼽힌다. 콩팥이 손상되면 만성 신부전을 거쳐 투석(기계로 혈액 속 노폐물을 걸러 내는 치료)이 필요해질 수 있고, 망막(눈 안쪽에서 빛을 받아들이는 막)의 혈관이 상하면 시력이 떨어지거나 심한 경우 실명에 이를 수도 있다.

130/80과 140/90은 의미가 다르다

혈압은 수축기 혈압(심장이 줄어들며 피를 내보낼 때의 압력)과 이완기 혈압(심장이 늘어나며 쉴 때의 압력)으로 나눠 읽는다. 단위는 mmHg(수은주밀리미터)다. 흔히 쓰이는 분류 가운데 하나를 보면 수축기 120 미만이면서 이완기 80 미만은 정상, 수축기 120~129에 이완기 80 미만은 주의 단계다. 수축기 130~139 또는 이완기 80~89는 1기 고혈압, 수축기 140 이상 또는 이완기 90 이상은 2기 고혈압으로 나뉜다.

140/90 이상은 치료 시작을 따져 보는 단계이고, 130/80부터 관리에 나서는 것이 최근 흐름이다. 다만 “관리를 시작한다”는 말과 “곧바로 약을 먹는다”는 말은 별개다. 분류 기준은 학회나 나라에 따라 조금씩 다를 수 있어, 숫자 하나만으로 스스로 판단하기보다 나이와 지병을 함께 살필 필요가 있다.

생활 습관의 효과로 흔히 소개되는 수치도 어디까지나 대략적인 기준이다. 소금 1g을 줄이면 혈압이 1mmHg, 체중 1kg을 줄이면 1mmHg 내려간다고 하며, 주 150분 빠르게 걸으면 수축기 혈압을 5~10mmHg 낮출 수 있다고 한다. 사람마다 결과는 다를 수 있고, 이런 노력이 처방받은 약을 대신하는 것은 아니다.

한두 번 높았다고 모두 고혈압은 아니다

병원에서만 혈압이 높게 나오는 흰옷 증후군이 있는 사람은 진료실 수치만으로 판단하기 어렵다. 측정 전에 커피를 마시거나 담배를 피웠을 때, 말을 하면서 재었을 때도 값이 달라질 수 있다. 이런 경우에는 집에서 잰 기록을 함께 볼 필요가 있다.

반대로 평소 수치가 130/80을 자주 넘는 어르신은 아무 증상이 없어도 관리 대상이 될 수 있다. 체질량지수(BMI, 몸무게를 키의 제곱으로 나눈 값)가 25를 넘으면 체중 감량을 함께 고려할 수 있다. 한국인의 나트륨 섭취량이 세계보건기구(WHO) 권고의 2배에 이른다는 점을 생각하면, 국이나 찌개 국물을 절반만 먹고 김치와 젓갈을 적게 곁들이며 라면 국물을 남기는 습관부터 살펴볼 만하다. 금연, 하루 1~2잔 이하로 줄이는 절주, 명상이나 호흡, 취미를 통한 스트레스 관리도 함께 권장된다.

이미 혈압약을 먹는 어르신은 판단이 또 다르다. 약을 평생 먹어야 한다는 부담이나 약이 콩팥을 망친다는 걱정으로 복용을 망설이는 경우가 있지만, 조절되지 않은 고혈압 자체가 콩팥을 손상시킬 수 있다는 점과는 따로 봐야 한다. 혈압이 정상으로 돌아왔다고 해서 약을 끊어도 된다는 뜻은 아니며, 임의로 중단하면 혈압이 다시 오를 수 있다. 약을 바꾸거나 끊는 일은 담당 의사와 상의해 결정할 필요가 있다.

집 혈압 기록부터 만들고 주치의에게 물어야

첫 단계는 정확한 측정이다. 가정용 혈압계를 마련하거나 보건소의 혈압 측정을 이용할 수 있다. 아침과 저녁 두 차례, 매일 같은 시간에 재고, 식사나 운동 뒤 30분이 지나 화장실을 다녀온 다음 5분쯤 앉아 안정한 상태에서 재는 것이 좋다. 두 번 재서 평균값을 적어 두면 변화를 살피기 쉽다.

하루 일과에 넣어 두면 지속하기가 수월하다. 아침에는 혈압을 재고 싱겁게 먹고, 점심에는 국물을 남긴 뒤 10분쯤 산책하며, 저녁에는 30분 걷고 가볍게 먹으면서 술을 피하는 식이다. 자기 전에 다시 혈압을 재고 밤 11시 전에 잠자리에 드는 것도 도움이 될 수 있다.

기록이 쌓이면 진료 때 주치의에게 자신의 목표 혈압은 얼마인지, 약이 필요한 단계인지, 운동 강도는 어느 정도가 알맞은지 물어볼 필요가 있다. 복용 중인 약에 대한 궁금증은 약사에게도 확인할 수 있고, 혈압 측정과 생활 습관 상담은 가까운 보건소에 문의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