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조금에도 얼굴이 빨개지는 것은 분해 효소가 부족하다는 신호일 수 있어
동물 실험에서 본 뇌 노화 가능성과 사람에게 확인된 사실은 구분해야
붉어지면 잔을 내려놓고 마신 양을 세며 복용 약은 주치의와 상의

명절 모임이나 경조사 자리에서 술 한두 잔에 얼굴이 금세 붉어지는 어르신이 적지 않다. 흔히 “체질일 뿐”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넘기거나, 얼굴이 빨개지는 사람이 오히려 술을 잘 받는다는 말도 오간다. 다만 얼굴이 붉어지는 현상은 몸이 술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고 있다는 신호일 수 있어 가볍게만 볼 일은 아니다.

얼굴이 붉어지는 이유는 분해되지 못한 독성 물질

술이 몸에 들어오면 간에서 분해되는 과정에서 아세트알데히드(술이 분해될 때 생기는 독성 물질)가 만들어진다. 이 물질을 다시 분해하는 효소가 부족한 사람은 아세트알데히드가 몸에 쌓이기 쉽다.

쌓인 아세트알데히드는 얼굴과 목이 빨개지는 반응, 두근거림이나 메스꺼움 같은 불편함으로 나타날 수 있다. 즉 얼굴이 붉어지는 것은 단순한 혈색 변화라기보다 몸이 독성 물질을 감당하기 어렵다는 표시로 볼 여지가 있다.

뇌 노화 가능성과 확인된 사실은 다르다

최근 한 연구에서는 독성 물질이 제대로 처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과도한 음주가 이어지면 뇌 노화가 빨라지고 기억력 같은 인지 기능(기억하고 판단하는 능력)에 나쁜 영향을 줄 가능성이 제시됐다. 술과 뇌 건강 사이의 연결고리를 보여 준다는 점에서 눈여겨볼 만한 내용이다.

하지만 이 연구는 동물 실험이어서 사람에게도 똑같이 일어난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동물에게서 관찰된 변화와 사람에게서 확인된 결과는 별개이며, 얼굴이 붉어진다고 해서 곧 치매가 생긴다는 뜻도 아니다. 그럼에도 음주 습관이 뇌 건강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은 생활 속에서 참고할 필요가 있다.

더 조심해야 할 사람은 누구인가

술을 조금만 마셔도 얼굴이 붉어지고 불편함을 느끼면서도 자리 분위기 때문에 잔을 계속 비우는 어르신이라면 특히 주의가 필요하다. 몸이 보내는 신호를 무시하고 과음이 반복될수록 독성 물질에 노출되는 시간도 길어질 수 있다.

질병관리청은 한 번에 남성 7잔, 여성 5잔 이상을 주 2회 이상 마시는 경우를 고위험 음주로 본다. 얼굴이 붉어지지 않는 사람이라도 이 기준을 넘는다면 안심할 수 없다는 뜻이다. 반대로 가끔 한두 잔을 즐기고 불편함이 없는 경우라면 지나친 걱정보다는 양을 지키는 습관이 우선이다.

여러 가지 약을 함께 먹는 어르신도 따로 살펴야 한다. 술은 약의 효과를 바꾸거나 부작용을 키울 수 있고, 앓고 있는 만성질환을 악화시킬 수도 있다.

잔 수를 세는 것부터 확인

가장 먼저 할 일은 술을 마신 뒤 얼굴이 빨개지거나 몸이 불편해지면 그 자리에서 잔을 내려놓고 쉬는 것이다. 술자리에서 몇 잔을 마셨는지 스스로 헤아리는 습관도 도움이 될 수 있다.

혈압약, 당뇨약, 수면제 등 평소 먹는 약이 있다면 술을 얼마나 마셔도 되는지 주치의나 약사에게 먼저 물어보는 것이 안전하다. 기억력이 예전 같지 않다고 느껴지면 가까운 보건소나 치매안심센터에서 인지 기능 검사를 받아 보는 방법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