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게 화를 낸 뒤 가슴이 답답하거나 잠을 설치는 어르신이 적지 않다
한순간의 화와 자주 반복되는 강한 분노는 몸에 주는 부담이 다를 수 있다
숨 고르기와 가벼운 운동을 해 보고, 심장약을 먹는다면 주치의와 상의할 필요가 있다

집안일이나 가족과의 말다툼 끝에 불쑥 화가 치민 뒤로 가슴이 답답하고 머리가 지끈거렸다는 어르신이 있다. 그날 밤 잠까지 설쳤다면 화가 건강에 얼마나 해로운지 걱정이 들 법하다. 다만 화를 내는 일 자체를 곧바로 병의 원인으로 볼 수는 없고, 눈여겨볼 것은 얼마나 자주, 얼마나 강하게 분노하는가다.

화가 나면 몸에서 벌어지는 일

화가 나면 몸은 비상 상황을 맞은 것처럼 반응한다. 아드레날린(긴장할 때 분비되는 스트레스 호르몬) 같은 물질이 늘면서 온몸이 긴장하고, 위협에 대처할 태세를 갖춘다. 이 반응은 순간적으로는 쓸모가 있지만, 잦거나 지나치게 강해지면 건강에 부담이 될 수 있다.

가장 먼저 꼽히는 곳은 심장이다. 분노가 잦거나 강할 때 심장이 평소보다 세게 뛰고 혈압이 치솟을 수 있어서다. 어떤 연구에서는 화가 폭발한 뒤 2시간 안에 심장마비 위험이 두 배 이상 높아질 수 있다는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소화 기관도 영향을 받는다. 뇌와 장은 서로 깊이 연결돼 있어서, 몸이 “싸움-도주 모드”(위기에 맞서거나 피하려는 비상 상태)로 바뀌면 소화 기능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을 수 있다. 입맛이 떨어지거나 속이 더부룩해지고, 복통, 배탈, 설사를 겪기도 한다. 위식도 역류 질환(위의 내용물이 식도로 거슬러 오르는 병)이나 과민성대장증후군(복통과 배변 이상이 되풀이되는 증상) 같은 만성 문제와 관련이 있다는 이야기도 있다.

잠과 마음도 흔들릴 수 있다. 분노는 뇌를 각성 상태로 붙들어 두어 잠들기 어렵게 하거나 자꾸 깨게 만들 수 있다. 잠이 부족하면 다음 날까지 피곤하고 짜증이 나기 쉽고, 길게 보면 감정 조절 능력까지 떨어지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 화를 계속 품고 있으면 걱정과 우울한 감정이 커지고 집중력이 떨어질 수 있으며, 날카로운 말이 오가면서 가까운 사람과의 관계가 상하기도 한다.

심장마비 위험 연구, 어떻게 읽어야 하나

앞서 나온 연구 결과는 화를 낸 직후의 위험을 경계하라는 신호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위험이 높아질 수 있다는 것과 화를 내면 심장마비가 온다는 것은 다르다. 이 결과만으로 모든 어르신에게 같은 위험이 있다고 단정하기도 어렵다.

화와 관련해 함께 거론되는 소화 문제나 수면 문제 역시 원인을 화 하나로 돌릴 수 있는 일과는 별개다. 속이 불편하거나 잠을 못 자는 증상이 이어진다면 “화 때문이겠거니” 하고 넘기기보다 다른 원인이 없는지 진료에서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

특히 조심할 사람과 스스로 다스려 볼 사람

더 조심해야 할 쪽은 고혈압이나 심장 질환으로 약을 먹는 어르신이다. 혈압과 심장 박동이 순간적으로 변하는 일이 더 부담스러울 수 있기 때문이다. 부정맥(심장이 불규칙하게 뛰는 증상)이 있다면 화가 날 때 늘어나는 아드레날린이 심장의 전기적 변화를 일으켜 증상을 악화시킬 가능성도 있다. 당뇨병 같은 다른 만성 질환이 있는 경우에도 화가 건강에 미치는 영향이 더 커질 수 있다.

이런 질환이 없고 가끔 화가 나는 정도라면 생활 속 습관부터 시도해 볼 만하다. 가장 손쉬운 방법은 곧바로 반응하지 않고 잠깐 멈추는 것이다. 코로 천천히 들이쉬고 입으로 길게 내쉬기를 몇 차례 되풀이하되, 숫자를 세면서 복식 호흡(가슴 대신 배가 부풀어 오르도록 쉬는 호흡)을 하면 도움이 될 수 있다. 숨을 고르는 사이 긴장이 풀리고 상황을 한 걸음 떨어져 볼 여유가 생길 수 있다.

몸을 움직이는 것도 방법이다. 격한 운동이 아니어도 집 근처 공원을 천천히 걷거나 TV를 보며 맨손 체조와 스트레칭을 하는 정도면 충분하다. 걷기는 심장 건강에도 좋은 운동으로 꼽힌다.

혼자 삭이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배우자, 자녀, 오랜 친구에게 속마음을 털어놓거나 경로당과 동호회에서 어울리다 보면 공감과 위로를 얻고, 뜻밖의 해결책을 찾기도 한다. 그림 그리기, 손글씨, 독서, 텃밭 가꾸기, 뜨개질, 손주와 놀아 주기처럼 즐겁게 몰두할 일을 두는 것도 화나는 상황에서 잠시 벗어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이럴 때는 주치의와 상의해야

화가 너무 자주 나거나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강해 일상생활이 힘들다면 혼자 고민하지 말고 주치의에게 알릴 필요가 있다. 진료 때는 화가 얼마나 자주 나는지, 그때 가슴 두근거림이나 답답함, 소화 불량, 불면이 함께 오는지를 말하면 상태를 살피는 데 도움이 된다.

혈압약이나 심장약을 먹고 있다면 화가 난 뒤 나타나는 증상을 약 처방 때 함께 묻는 것이 좋다. 전반적인 건강 상태를 아는 주치의를 통해 필요하면 심리 상담가 같은 전문가와 연결될 수도 있다. 화를 내고 난 뒤 가슴 통증이나 심한 답답함이 가라앉지 않는다면 지켜보지 말고 119에 연락해 진료를 받아야 한다.